10년 전쯤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 터키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터키 내에서 비행기로 이동하는 비싼 패키지가 아니라 버스로 이동하는 상품이었습니다. 7박9일 일정의 비슷한 여행 코스임에도 불구하고 두 배 이상 가격 차가 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버스로 이동하는 일정은 그야말로 빡셌습니다. 덕분에 터키 땅이 넓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습니다. 특히 이동시간이 길었던 날, 여행인지 고행인지 모를 버스 고문에 시달리면서 차창 밖을 보다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산비탈에서부터 내려온 올리브나무 숲이 끝도 없이
이 그림을 보니 학창 시절 선생님들이 자주 내주던 ‘깜지’ 숙제가 생각납니다. 연습장에 영어 단어나 한자 단어를 빽빽이 써내야 하는 숙제였습니다.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단어를 써내려 가다 보면 정작 단어는 잊어버리고, 여백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지요.작가 홍경택(44)도 ‘무엇’을 그리느냐보다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가로 8m에 이르는 이 작품(펜3)은 작가가 지난 10년간 매달려 완성했다고 합니다. 연필, 책 등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도구들이지만 강박증을 의심할 정도로 작업의 과정은
우체국을 지나 구멍가게를 지나면 별 다방이 나옵니다. 짙은 선팅을 한 유리창 너머에선 윗동네 김씨 아저씨가 ‘출근 도장’을 찍고 ‘미스 리’에게 수작을 걸고 있을지 모릅니다. 색색의 줄이 꽈배기처럼 돌아가는 이발소 간판 아래서는 손님을 기다리다 지친 주인 아저씨가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한가로운 논둑에선 눈부신 봄이 함성을 지르며 사방으로 내달리고 있습니다.그림 속으로 들어가보니 눈앞에 낯익은 기억이 펼쳐집니다. 누구의 고향인들 어떻습니까. 내 고향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작가의 개성을 앞세운 풍경화가 있는가 하면, 작가
지난 겨울 서울 인사동 거리를 바쁘게 지나다가 한 갤러리에 걸린 그림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약속 시간이 빠듯한데도 몸은 이미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대작 위주의 작품들 속에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도시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숨 쉴 틈 없이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이 솟아있는 그림 앞에 서는 순간 멀미가 난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한 공간에 있을 수 없는 풍경들이 서로 엉켜있는가 하면, 원근법을 무시하고 시선의 이동에 따라 건물을 해체한 후 재배치해 놓았습니다. 작가의 시선을 좇아가다보니 마치 롤러코스터로 빌딩을 타
세계 미술시장 최고의 큰손인 카타르의 공주가 그림뿐만 아니라 앤티크 주얼리를 포함한 명품 보석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 카타르 왕의 딸 셰이크 알 마야사 빈 카리파 알타니(28) 공주는 일본의 세계적 ‘앤티크 주얼리’ 딜러를 통해 최소한 수백 점의 작품을 한꺼번에 구입하기 위해 은밀하게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수천 점의 앤티크 주얼리를 소유하고 있는 일본 딜러는 “아직 공개할 단계가 아니다. 5월쯤이면 구체적인 거래 내용을 밝힐 수 있다”면서 신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알 마야사 공주는 고가의 미술품을 무섭게 사
“동업은 형제, 자매지간에도 하지 마라.” “동업하겠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겠다.” 누구나 한두 번은 들어본 말이다. 이런 통념을 깨고 동업을 부추기는 남자가 있다. 돈도 없고 머리도 없고 전문성도 없는 보통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동업이라고 그는 말한다.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이 남자, 남들은 한 번 성공하기도 어려운 사업을 동업을 통해 수없이 성공시켰다. 김병태(54) CWT(Carlson Wagonlit Travel)코리아 회장이다. 그는 ‘동업의 달인’으로 불린다. 그는 스스로를 “보통
빛을 한아름 쏟아내며 봄이 내달립니다. 굳어있던 대지의 맥박이 빨라집니다. 높고 낮은 산들을 넘고 언덕을 넘고 강을 건넌 봄이 가쁜 숨을 토해냅니다. 회색 나무줄기에 연초록 물이 오르고, 가지 끝에선 색색의 생명이 팡팡 터집니다. 밝고 경쾌한 봄이 서양화가 손미라의 그림 속에서 색채의 축제를 열었습니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왈츠’가 들리는 듯합니다. 노란 치마에 분홍 립스틱 바르고 서투른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습니다.이렇게 밝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마음이 궁금하지 않나요. 손미라는 최소한의 이미지만으로
물건을 산 후 처치 곤란이었던 포장박스가 예술품으로 거듭났다. 재활용 쓰레기장에 버려지는 대신 당당하게 거실 장식품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독일의 공기청정가습기 회사인 ‘벤타 에어워셔’의 국내 수입업체인 벤타코리아(대표 김대현)가 젊은 작가 김용관과 손잡고 ‘벤타 아트 콜라보레이션 박스’를 선보였다. 기업과 예술의 만남,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 진화하고 있다. 패션, 가방, 액세서리부터 주류, 전자제품까지 기업들이 ‘예술’ 모시기에 바쁜 가운데 벤타코리아는 과감하게 포장박스에 예술을 입혔다. 벤타코리아는 지난
보리밭은 질긴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밟을수록 단단해집니다. 겨울을 품어 건강한 봄을 생산합니다. 원로화가 이숙자(70·전 고려대 교수)는 그 보리밭에서 40여년을 뒹굴었습니다. 결혼 후 시어머니와 시할머니, 층층시하에서 살았던 그는 가슴속 뜨거움을 토해내지 못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현실은 그에게 붓을 들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던” 그의 눈앞에 어느 날 생명력 넘치는 초록 보리밭이 펼쳐졌습니다. 봄이면 미친 듯이 보리밭으로 달려갔습니다. 보리 수염 한 올 한 올까지 가슴에 품고 화폭에 심었습니다
덴마크의 건축가이자 가구디자이너 핀 율(Finn Yuhl·1912~1989). 한국에서는 낯선 이름이지만 북유럽 가구의 역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작품 ‘No. 45 체어’는 ‘현대 의자의 어머니’라고 불릴 만큼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가장 아름다운 팔걸이를 가진 의자’라고도 불리는 ‘No. 45 체어’는 가구디자이너들이 교본으로 삼는 작품이다. 핀 율이 작은 의자만 만들다 큰 의자로 처음 시도한 ‘치프텐(chieftain)’은 그의 전시 때 덴마크왕이 직접 앉았다고 해서 ‘왕의 의자’라는 명예를 얻었다. ‘가구의
[image1]미슐랭을 탐하다유민호. 효형출판. 1만5000원미슐랭 가이드 별점 하나 떨어졌다고 요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백인들이 먹다 남은 재료로 소울푸드를 재탄생시키고, 워싱턴 파워 런치에서는 미국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 ‘폴 보퀴즈’에서 ‘단지’까지 미슐랭 레스토랑을 직접 방문한 저자가 맛은 물론 요리 속에 숨은 이야기들을 전해준다.[image2]피로사회한병철. 문학과지성사. 1만원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가 현대사회의 성과주의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독일의 권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이 그의 특집 기사를
꽃은 흐드러지고 새들의 수다가 요란합니다. 아내가 엉덩이 치켜들고 힘차게 걸레질하는 사이, 남편은 개를 붙들고 한바탕 ‘블루스’라도 출 모양입니다. 골프 연습은 싫증이 났습니다. 좀 전에 휘두르던 골프채가 담벼락에 기대어져 있습니다. 사슴 모자(母子)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동네에 구경거리라도 생긴 걸까요. 우물가의 무심한 수선화는 봄 햇살에 얼굴이 활짝 폈습니다. 나무, 새, 꽃, 개, 자동차 할 것 없이 행복해 보입니다. 바쁜 일도, 욕심부릴 일도, 얼굴 붉힐 일도 없는 이곳이 바로 ‘천국’입니다.제주의 화가 이왈종(67)이 서
청소년과 부모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 각자의 언어로 상대를 읽고 말하다 보니 자꾸 어긋난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보고 “이해 못할 외계인 같다”며 답답해하고, 아이들은 부모를 향해 “말이 안 통한다”면서 입을 닫는다. 아이들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언어를 먼저 알아야 한다.20년 가까이 청소년 상담을 해 온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재연(51·무악재성당 주임신부·햇살청소년 사목센터 소장) 신부가 ‘청소년 사전’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고 ‘아이들의 언어’와 ‘아이들의 목소리’를 전해주기 위해 나섰다. 아이들의 언어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
역사는 밤에 이뤄지고 기사 아이템은 회의실보다 술자리나 밥상머리에서 많이 나옵니다. 주간조선 기자 몇 명이 모여 앉은 점심식사 자리였습니다. 온갖 주제의 대화가 산만하게 오가다 어느 순간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한가지 주제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대화가 모아졌다는 것은 주제가 그만큼 흥미롭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대한민국 남자실종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기업에서 면접을 보면 뽑을 만한 남자들이 없다더라” “반에서 1등부터 10등은 전부 여학생들이다” “이제 여자들 세상인데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할지 모르겠다” …. 다양한
진화생물학자 최재천(56·이화여대 석좌교수) 교수는 ‘여성의 시대’는 반드시 올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최 교수는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2003)는 제목의 책을 펴내고 남녀 성별 간 장벽을 허물자고 주장해왔다. 최 교수는 지난 2004년 헌법재판소에 ‘유전적으로나 진화적 측면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기여도가 훨씬 높기 때문에 남성 중심으로 혈통을 기록하는 호주제는 비합리적’이라는 내용의 생물학적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호주제 폐지’에 큰 몫을 했다. 최 교수가 전망한 대로 요즘 남성들은 화장하느라 바쁘다.
아들을 가진 부모들 걱정이 크다.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는데, 딸은 자기 일 자기가 알아서 잘하는데 아들 녀석은 그렇지 않아 영 걱정”이라고 말하는 40, 50대 아버지가 적지 않다. 똑똑한 여자들 틈에서 아들들이 어떻게 살아갈지도 걱정이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왜 여자들에게 밀려나고 있을까. 왜 아들들은 점점 허약해지고 있는 걸까.우선 뇌 속으로 들어가 보자. 뇌 과학자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고 한다. 그 증거로 뇌량(腦梁)의 차이를 말한다. 뇌량은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20%가 크다. 당
대한민국 남자들이 사라졌다. 가정에서도 학교, 사회에서도 여자에 가려 남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신문을 봐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영역에서 ‘사상 최초’ ‘역대 최대’란 수식어가 붙은 여성 활약상을 소개하는 기사가 넘친다. 초·중·고교에서 여학생 득세 현상은 새삼스러운 뉴스가 아니다.여성이 무섭게 영역을 확장하는 사이 남성은 점점 사회의 주변부로 사라지고 있다. 최근 10년 여성의 약진이 양적 확대였다면, 이젠 곳곳에서 수장 자리를 꿰차며 질적인 상승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안주하던 남성은 ‘알파걸’이라는 강
“종이 부인은 이 땅의 모든 여성이다. 풍우와 서리 속에 터를 일구어 온 닥나무처럼 질기고 강인한 근성의 종이 부인을 제단에 모시고 그늘 속에서 슬픔을 이겨온 모든 여성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경배를 올린다.”한지에 전통 채색을 입혀 역사 속 여성을 살려내는 작업을 하는 ‘종이 부인’의 작가 정종미(55)가 작가 노트에 적은 글입니다. 그는 수묵 중심의 한국화에서 비주류인 채색화를 살려내고 DNA에 새겨진 ‘우리의 색’을 찾아 천연 염색·안료와 오랜 시간 씨름했습니다. 그의 손을 거쳐 부활한 색들을 통해 고려 불화와 조선시대 영정이,
‘세월아,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그림을 보다 신현림 시인의 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고통이 겹겹이 쌓인 얼굴을 보는 순간 ‘쿵’, 마음에 바윗덩어리 하나 떨어집니다. 그의 고통이 너무나 낯이 익어서일 겁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치 내 마음을 보고 있는 듯합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곳을 ‘사바세계’라고 이릅니다. 산스크리트어인 ‘사바’는 ‘감인(堪忍)’ 또는 ‘회잡(會雜)’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감인은 참아내야 한다는 것이고, 회잡은 잡된 인연으로 얽히고설킨 세계입니다. 온갖 삶이 얽힌 세계에서 참고 견디며 업의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가장 짧은 시간에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외국인 관광객이 음식컨설팅업체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스(www.ongofood.com)의 사이트에 남긴 글을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우리 가족은 서울에 짧게 머무르면서 최대한의 것을 체험해보고 싶어 온고푸드의 요리 클래스에 신청했습니다. 사찰음식이 특히 매력적이어서 레시피도 가져왔습니다. 특히 푸드투어가 여행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서울 시민이 먹는 음식들을 먹어보고 음식 하나하나에 담긴 역사와 한국 문화를 보았습니다. 서울에 와서 한 가지 일을